다시 학생이 된 이유, 감으로 말하던 것들을 데이터로 말하고 싶어서
SAP·MES로 생산관리를 하던 실무자가 방송통신대 통계·데이터과학과에 편입한 이유. 감이 아닌 데이터로 생산 지표를 말하고 싶었던 과정을 담담하게 기록합니다.
“이거 납기 언제 가능해요?”
생산관리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그리고 가장 자신 없게 대답하는 질문이기도 했다.
“이전 실적 보면 보통 이 정도 걸렸으니까, 한 사나흘 더 잡으면 될 거예요.”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누가 “그 사나흘은 어떻게 나온 숫자예요?”라고 물으면, 솔직히 할 말이 없었다. 감이었다. 오래 일하면서 쌓인 감.
데이터는 쌓이는데, 읽는 눈이 없었다
SAP와 MES를 다루는 사람은 사실 누구보다 데이터에 가까이 있다. 생산오더, 재고 이동, 판매 실적까지 매일 시스템 안에 쌓인다. 문제는 그 데이터를 뽑아내는 것까지는 하는데, 그다음이 늘 감이었다는 거다.
납기를 잡을 때, 수주 패턴을 볼 때, 생산량 추이를 볼 때, 재고가 쌓이고 빠지는 흐름을 볼 때, 판매 추이를 볼 때. 그래프를 그려놓고 “최근에 좀 늘었네요”, “이 시즌엔 항상 이래요” 같은 말을 했지만, 그게 진짜 의미 있는 변화인지 그냥 늘 있는 흔들림 안의 출렁임인지 구분할 방법이 없었다.
납기라면 과거 리드타임이 얼마나 들쭉날쭉했는지를 같이 봐야 “이 정도 여유를 두면 웬만하면 맞출 수 있다”고 근거를 가지고 말할 수 있다. 수주나 판매의 계절성도, 생산량의 추세도, 재고 품목의 우선순위도 마찬가지다. 다 어디선가 들어는 봤는데, 직접 해볼 줄은 몰랐다. 데이터는 매일 보면서도, 읽는 눈이 없었던 거다.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쌓이고 나서
이런 갈증이 분명해진 건, SAP 안정화와 보완 프로젝트까지 끝내고 나서였다. 구축이 끝나고 시스템이 자리를 잡으니, 그제야 믿고 쓸 수 있는 데이터가 쌓이기 시작했다. 생산도, 재고도, 판매도 더 이상 누군가의 기억이나 엑셀 메모가 아니라 시스템 안의 숫자로 남았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떠올랐다. 이렇게 쌓인 데이터를, 나는 제대로 쓰고 있나. 보기 좋게 그래프로 그리는 것까지는 했지만, 그 안에서 의미를 끄집어내는 건 여전히 감이었다. 이왕이면 그걸 감이 아니라 전문성으로 다루고 싶었다. 그게 편입을 결심한 진짜 계기였다.
선택지가 많지는 않았다
처음엔 따로 공부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책을 보거나,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인강을 듣거나, 아니면 먼저 해본 선배들의 노하우를 어깨너머로 배우면 충분하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그걸로는 부족했다. 단편적인 지식은 쌓이는데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모르니, 막상 내 데이터에 적용하려고 하면 손이 안 갔다. 결국 누가 짜놓은 커리큘럼을 처음부터 순서대로 밟는 게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직장인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사실 선택지가 많았던 건 아니다. 일을 그만두고 학교에 갈 수도 없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어딘가로 가야 하는 과정도 무리였다. 그래서 일하면서 다닐 수 있는 방송통신대학교 통계·데이터과학과를 택했다. 거창한 결심이라기보다,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솔직히 시작할 때는 괜한 에너지 낭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안 그래도 빠듯한 일상에 공부를 얹는 게 맞나 싶었다. 그래서 처음 먹었던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스스로 자주 다잡아야 했다.
강의는 못 알아들었지만
그렇게 방통대에 입학하고, 첫 학기가 시작됐다.
첫 학기에 여섯 과목을 들었다. 통계학개론, 데이터시각화, 파이썬데이터처리, 데이터처리와활용, 엑셀데이터분석, 그리고 원격대학교육의이해.
솔직히 강의를 들을 땐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순간이 많았다. 분명 듣는 동안엔 이해한 것 같은데, 막상 과제를 펴면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래도 어떻게든 풀어냈다. 막힐 때마다 AI에 묻고 또 물으며, 같은 과 커뮤니티에서 해법을 찾기도 했다. 혼자 끙끙대는 공부가 아니라, 계속 묻고 부딪히며 넘어간 한 학기였다.
신기한 건, 그렇게 손으로 풀다 보니 강의로는 안 잡히던 게 잡히기 시작했다는 거다. 이해하고 나서 과제를 한 게 아니라, 과제를 하면서 이해했다. 늦은 시간까지 과제를 붙잡고 시험을 준비하는 날들이, 새로 시작한 나에게는 작지 않은 모험이었다.
오랜만에 잡아본 펜
오랜만에 펜을 잡고, 공학용 계산기를 두드리고, 종이에 직접 뭔가를 쓰고 기록했다. 모든 게 화면 안에서 끝나는 시대에, 손으로 쓰고 머리로 이해하는 그 아날로그 같은 감각이 은근히 좋았다. 새로운 걸 이해했을 때의 그 작은 성취감도.
생각지 못한 변화도 있었다. 내가 책상에 앉아 공부하니, 아이도 옆에서 같이 공부를 하더라. 그 모습을 보는 게 좋아서라도 조금 더 앉아 있게 됐다.
심심하면 쇼츠를 넘기거나 TV를 틀어놓고 의미 없이 흘려보내던 시간이 많았는데, 학교를 다니면서부터는 취미가 공부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밀려오는 과제와 다가오는 시험은 여전히 나를 쫄깃하게 만들지만, 그 긴장감마저 나쁘지 않다.
다행히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욕심내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했는데, 첫 학기치고는 스스로 만족할 만했다. 그게 다음 학기를 이어갈 작은 힘이 됐다.
앞으로 이 카테고리에서 쓸 것들
이 카테고리에서는 크게 세 가지를 다룰 생각이다. 수업에서 배운 통계 개념을 입문자 눈높이로 풀어보는 글, SAP와 MES에서 보던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다시 읽어보는 글, 그리고 학기마다 듣는 과목과 공부 방법에 대한 기록.
첫 학기를 마치고 이제야 첫 글을 쓰지만, 공부하면서 배운 것들을 차근차근 정리해보려 한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참고가 되고, 나에게는 스스로의 기록이자 성장 과정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감으로 말하던 것들을, 이제 조금씩 데이터로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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