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P Joule와 클린코어, 새 메뉴를 올리기 전에 주방부터

SAP의 AI 비서 Joule을 쓰려면 클린코어가 전제이고, 클린코어로 가려면 쌓인 Z-코드 정리가 먼저입니다. SAP NOW AI Tour 2025 Korea에서 확인한 AI 도입의 진짜 순서를 실무자 시선으로 정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Rabbit입니다! 🐰

신메뉴 하나를 메뉴판에 올리는 일이, 가끔은 주방 전체를 뜯어고치는 일이 됩니다. 손님은 접시만 보지만, 주방장은 그 한 접시를 내기 위해 화구 배치부터 식자재 동선까지 다시 짜야 한다는 걸 알죠.

지난 7월 SAP NOW AI Tour 2025 Korea에서 SAP의 AI 비서 Joule(쥴)을 처음 제대로 들여다봤을 때 든 생각이 꼭 그랬습니다. 새 메뉴는 분명 먹음직스러운데, 우리 주방이 그걸 감당할 수 있는지가 문제였습니다. 오늘은 그날의 핵심이었던 Joule과 클린코어(Clean Core)를 정리하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AI 도입은 순서가 거꾸로입니다. 쓰고 싶은 건 맨 위에 있는데, 손대야 할 건 맨 아래에 있습니다.

3줄 요약
  • Joule은 자연어로 지시하는 ‘SAP 시스템 전용 AI 비서’다.
  • Joule을 제대로 쓰려면 클린코어가 사실상 전제 조건이다.
  • 클린코어로 가려면 그동안 쌓인 Z-코드부터 정리해야 한다 — 도입은 기능 추가가 아니라 시스템 재구축에 가깝다.

SAP Joule, 시스템 전용 AI 비서

Joule(쥴)은 ‘SAP 시스템 전용 AI 비서’입니다. “이번 분기 영업 실적 보고서 만들어줘”, “이 고객사의 미결 주문 찾아줘” 같은 일상 언어로 지시하면, Joule이 시스템을 뒤져 결과를 정리해 줍니다.

주방으로 치면, 재료 위치와 레시피를 전부 외우고 있어서 말 한마디에 척척 찾아주는 보조 셰프입니다. 어느 선반에 무엇이 있는지, 어제 들어온 재료가 어디 있는지 일일이 찾을 필요 없이 “그거 가져와”로 끝나는 거죠. 재무·구매·공급망·HR 등 SAP가 다루는 전 영역에 걸쳐 이런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SAP NOW AI Tour 2025 Korea에서 본 Joule 데모는 실제로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연어 질의 하나로 여러 모듈을 넘나들며 원하는 데이터를 끌어오는 모습은, “이게 되면 업무 방식이 달라지겠다”는 생각이 드는 수준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생각이 채 가시기도 전에 현실이 따라온다는 점입니다. 이 보조 셰프는 ‘정리된 주방’에서만 제 실력을 냅니다.

클린코어, Joule이 일할 수 있는 조건

Joule이 똑똑하게 일하려면 시스템이 일정한 규칙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 규칙의 이름이 클린코어(Clean Core)입니다.

개념은 스마트폰으로 비유하면 쉽습니다. 우리는 iOS나 안드로이드 같은 운영체제 자체를 뜯어고치지 않습니다. 필요한 기능은 앱스토어에서 앱으로 받아 쓰죠. 클린코어도 같은 사고방식입니다. S/4HANA의 핵심 시스템은 표준 그대로 깨끗하게 두고, 회사에 필요한 추가 개발은 BTP(Business Technology Platform) 같은 외부 플랫폼에 앱처럼 붙입니다.

핵심을 깨끗하게 유지하면 두 가지가 따라옵니다. SAP가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도 충돌이 적고, Joule 같은 표준 기반 AI가 시스템을 예측 가능하게 읽어낼 수 있습니다. 주방의 선반 배치가 본사 표준대로 정리돼 있어야, 보조 셰프가 어디에 뭐가 있는지 헤매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순서가 이렇게 정해집니다. Joule을 쓰고 싶다 → 클린코어가 전제다. 그런데 진짜 관문은 그다음에 있습니다.

진짜 관문: 그동안 쌓인 Z-코드

SAP Joule에서 클린코어로, 다시 Z-코드 정리로 이어지는 의존성 도식. 목표는 맨 위(Joule)지만 손은 맨 아래(Z-코드)부터 대야 한다는 구조 그림 1. AI 도입의 거꾸로 된 순서. 목표는 맨 위(Joule)지만, 손은 맨 아래(Z-코드)부터 대야 합니다.

많은 회사의 시스템은 이미 표준에서 한참 벗어나 있습니다. 표준 기능만으로 안 되는 업무를 처리하려고, 회사가 직접 만든 커스텀 코드 — 즉 Z-코드(CBO)를 수년간 쌓아왔기 때문입니다. 시스템 곳곳이 ‘Z’로 시작하는 프로그램으로 채워져 있죠.

Z-코드 하나하나는 그 시점엔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단골손님 입맛에 맞춘 우리 매장만의 특별 소스였으니까요. 결재 단계가 표준보다 복잡해서, 업종 특성상 표준 화면에 없는 항목이 필요해서, 현업의 요청마다 하나씩 만들다 보니 쌓인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 소스가 수백 개 쌓이고 나면, 본사 표준 레시피로 돌아가는 일 자체가 거대한 공사가 됩니다. 클린코어 전환은 ‘기능 하나 더하기’가 아니라 주방 전체를 뜯어 다시 설계하는 수준의 프로젝트가 됩니다. 더구나 UI도 아직 현대적인 Fiori(피오리) 기반으로 전환하지 못한 회사가 많아서, 갈 길은 더 멀어집니다.

SAP NOW AI Tour 2025 Korea 행사장을 나오며 남은 생각이 이것이었습니다. Joule이 보여주는 미래는 분명 매력적인데, 그곳으로 가는 길이 생각보다 멀다는 것.

그래서, 무엇부터 해야 하나

출발점은 신기능 검토가 아니라 내 시스템 진단입니다. 아래 순서로 생각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첫째, 쌓인 Z-코드부터 파악합니다. 무엇이, 왜,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는지. 지금도 실제로 쓰이는지, 표준 기능이나 설정 변경으로 대체 가능한지를 먼저 들여다봐야 합니다. 이 목록 자체가 우리 시스템의 현재 상태를 보여주는 지도입니다.

둘째, 표준으로 되돌릴 것과 BTP로 옮길 것을 구분합니다. 클린코어는 커스터마이징을 전부 없애는 게 아닙니다. 핵심 시스템을 깨끗하게 유지하면서, 필요한 확장은 표준 방식(BTP·SAP Build)으로 다시 구현하는 겁니다. 기존 Z-코드 중 표준으로 흡수되는 것과, 외부 플랫폼으로 이전해야 하는 것을 구분하는 작업이 핵심입니다.

셋째, 단계적인 로드맵을 그립니다. 한 번에 전환하는 회사는 거의 없습니다. 신규 개발부터 클린코어 원칙을 적용하고, 기존 Z-코드는 업그레이드 주기나 업무 변경 시점에 맞춰 순차적으로 정리하는 방식이 현실적입니다.

성급하게 AI부터 들이려다 보면, 정리되지 않은 주방에 보조 셰프만 한 명 더 들어와 오히려 동선이 엉킵니다. 진단이 먼저, 도구는 그다음입니다.

Rabbit의 한 끗

AI 도입의 진짜 관문은 ‘Joule이 얼마나 똑똑한가’가 아니라, 우리 시스템이 얼마나 표준에 가까운가입니다.

화려한 새 메뉴를 보면 당장 올리고 싶지만, 주방이 그걸 감당할 수 있어야 손님 식탁까지 갑니다. 신기능 데모에 마음을 빼앗기기 전에, 내 시스템에 쌓인 Z-코드부터 펼쳐 보는 것. 그 진단이 곧 AI 도입 로드맵의 첫 페이지입니다. 새 메뉴를 보러 갔다가, 정작 우리 주방 도면을 다시 펴 보게 된 하루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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